기사를 보면 종종 나오는 용어 중에 ‘기부채납’이 있다. 많은 사람이 이 단어가 무슨 뜻인지 잘 와닿지 않는다고 한다. ‘기부채납’의 ‘채납(採納)’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의견을 받아들임’ ‘사람을 골라서 들임’이라고 나온다. 그렇다면 ‘기부채납’은 기부를 받아들이는 것이라 풀이할 수 있다. ‘기부채납’은 표준국어대사전엔 없고 법률에만 나오는 용어다. 그럼 왜 사전에도 없는 말이 법률용어로 쓰이게 됐을까? ‘기부채납’은 우리 사전은 물론 중국어 사전에서도 찾을 수 없는 말이다. 오로지 일본어 사전에만 나온다. 따라서 우리가 법률을 만들 때 일본 것을 참조하면서 이 용어가 들어왔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일본에서 들어온 것이라고 무턱대고 배척할 일은 아니지만 문제는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가 펴낸 행정용어순화편람(1992년)에서 ‘기부받음’ ‘기부받기’로 순화용어를 정하고 순화된 용어만 써야 하는 어휘로 분류했다. 그러나 실제 사용에선 ‘기부받음’ ‘기부받기’로 단순 치환하는 것이 어려우므로 주체에 따라 서술어로 기부하는 것과 기부받는 것 두 경우만 구분해 주면 된다. “30년간 민간업체가 도로를 운영한 뒤 국가에 기부채납할 예정이다”에선 ‘기부할 예정이다’고 하면 된다. 반대로 국가나 지자체의 입장이라면 일반적으로 “이 도로는 민간업체에서 기부채납받은 것이다” 식으로 서술하는데 이때는 그냥 ‘기부받은 것이다’로 하면 된다. 이처럼 ‘채납’ 없이 ‘기부’만 활용해 얼마든지 표현이 가능하다. 법률용어에서 아예 ‘채납’을 없애버리고 ‘기부’라는 단어를 문맥에 맞게 사용하면 된다.우리말 바루기 기부채납 우리 사전 합리적 의심
2025.12.11. 18:30
요즘 상품을 파는 곳, 즉 매장과 관련해 많이 듣는 용어가 ‘플래그십 스토어’다. “국내 첫 플래그십 스토어를 개장했다” “○○ 플래그십 스토어가 새롭게 단장했다” 등처럼 사용된다. 플래그십(flagship)은 원래 기함(旗艦), 즉 지휘선을 뜻하는 영어다. 이것이 의미가 확장돼 주력(대표) 상품(서비스·건물) 등의 뜻으로 쓰인다. 플래그십 스토어(flagship store)는 일반적으로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특정 상품 브랜드를 중심으로 해 전체 브랜드의 성격과 이미지를 극대화한 전략 매장을 가리킨다. 브랜드를 효율적으로 홍보하는 수단이 되다 보니 유동인구가 많고 상징성이 큰 상권에 입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는 이 용어가 쉽게 와닿지 않는다. 국립국어원은 ‘플래그십 스토어’를 대체할 우리말로 ‘체험 판매장’을 선정한 바 있다. 소비자가 제품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판매장이란 점에 주목해 이 용어를 선택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대해 ‘체험 판매장’은 ‘플래그십 스토어’의 일부 기능만 반영한다는 비판이 있다. 하지만 외국어를 우리말로 일대일로 옮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란 점을 감안해야 한다. ‘체험 판매장’과 더불어 상황에 따라 ‘주력 매장’ ‘전략 매장’ 등으로 부르면 어떨까 싶다. ‘플래그십 스토어’와 함께 ‘팝업 스토어’란 말도 요즘 많이 듣는다. 팝업 스토어(pop-up store)는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한두 달 정도로 단기간에 운영하는 상점을 일컫는 말이다. 국립국어원은 ‘팝업 스토어’를 대신할 우리말로 ‘반짝 매장’을 선정했다.우리말 바루기 플래그십 스토어 플래그십 스토어 팝업 스토어 체험 판매장
2025.12.09. 18:48
“뭘 좀 먹는 일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속 대사는 현실에서도 유효하다. 갓 지은 밥 한 그릇,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이 지친 마음을 녹이기도 한다. 별거 아닌 거에 위로를 받는 순간이다. 소설의 ‘별것 아닌 것’과 현실의 ‘별거 아닌 거’의 차이는 뭘까? ‘별거’는 ‘별것’, ‘거’는 ‘것’을 구어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별것 아닌 것’을 입말로 표현하면 ‘별거 아닌 거’가 된다. ‘거’에 서술격조사 ‘이다’가 붙으면 ‘거다’가 되고 주격조사 ‘이’나 보격조사 ‘이’가 붙으면 ‘게’로 형태가 바뀐다. “곧 힘낼 거다” “사는 게 뭐라고”처럼 쓰인다. “어떤 것으로 할까” “어떤 거로 할까” “어떤 걸로 할까” 중 올바른 문장이 뭐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의미상 차이는 없다. ‘것으로’를 입말로 하면 ‘거로’가 된다. ‘걸로’는 ‘것으로’의 줄임말이다. ‘것’의 형태일 때는 앞말과 잘 띄다가도 ‘거’로 모습을 바꾸면 앞말에 붙이는 경우가 많다. ‘것’ ‘거’ 모두 의존명사다. 앞말과 띄는 게 원칙이다. ‘게’와 ‘걸’의 형태가 됐을 때 혼란은 가중된다. ‘게’가 ‘것이’의 줄임말이면 띄지만 어미나 조사로 쓰이면 붙인다. “힘든 게 많죠” “버티는 게 쉽지 않아”와 같이 ‘것이’가 줄어든 형태일 때는 띄어야 한다. “별명이 뭐였게?” “든든하게 먹어” “내게 줘”처럼 어미나 조사로 사용됐을 때는 앞말에 붙인다. ‘걸’도 마찬가지다. ‘걸’이 -ㄴ걸, -ㄹ걸 등 문장 끝에서 종결어미로 쓰이면 붙이나 ‘것을’의 줄임말이면 띄어야 한다. “이미 떠난걸” “꽃이 예쁜걸”과 같이 어미로 사용됐을 때는 앞말에 붙이지만 “좀 참을 걸 후회돼”처럼 ‘것을’이 줄어든 형태일 때는 띄어 쓴다.우리말 바루기 별것 의미상 차이
2025.12.04. 19:08
최근 내린 폭우로 남가주 산간 지역에서는 눈이 내렸다. 그래서 SNS에는 눈 사진과 함께 ‘첫눈의 설레임’이란 제목이 꽤 올라왔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문제 하나. ‘설레임’은 맞는 표현일까? 익숙한 ‘설레이는 이 마음’이란 표현을 생각하면 ‘설레임’이나 ‘설레이는’이 문제가 없는 말로 생각하기 쉽다. ‘설레임’과 ‘설레이는’의 기본형은 ‘설레이다’이다. 그러나 ‘설레이다’는 ‘이’가 없는 ‘설레다’가 맞는 낱말이기 때문에 ‘설레이다’를 활용한 말은 모두 바른 표현이 아니다. 따라서 ‘설레다’를 활용한 ‘설렘’과 ‘설레는’이 맞는 말이다. ‘보다→보이다’ ‘놓다→놓이다’처럼 ‘설레다’에 피동을 만드는 ‘이’를 붙여 ‘설레이다’로 쓰는 것이 아니냐고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설레다’는 애초에 피동 표현이 불가능한 말이다. 마음은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지 남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레다’를 ‘설레이다’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를 넣어 잘못 쓰는 것이 적지 않다. ‘날씨가 개이다’ ‘정처 없이 헤매이다’ ‘목이 메이다’ ‘살을 데이다’에서의 ‘개이다’ ‘헤매이다’ ‘메이다’ ‘데이다’ 역시 ‘개다’ ‘헤매다’ ‘메다’ ‘데다’가 바른 표현이다. 이들의 명사형은 각각 ‘갬’ ‘헤맴’ ‘멤’ ‘뎀’이다. ‘설레임’이나 ‘설레이는’처럼 ‘이’를 추가하는 것은 이것이 더욱 리듬감 있게 발음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혹 말할 때는 이렇게 하더라도 글을 쓸 때는 ‘설렘’ ‘설레는’으로 바르게 적어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설레임 피동 표현 남가주 산간 문제 하나
2025.12.02. 20:21
독감이 유행이라는 얘기를 듣고 난 뒤라 그런지 주위에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유난히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지인들과의 단체 메시지 창에는 “감기 조심하세요” 등과 같은 문구가 자주 올라온다. 감기가 든 이에게는 안부 인사로 “감기 얼른 낳으세요”라는 글을 종종 건네기도 한다. 이 같은 문구를 볼 때마다 ‘감기’를 ‘낳으면’ 어떻게 될까, 기괴한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곤 한다. 우리말은 받침으로 쓸 수 있는 글자가 많아 사실 표기할 때 헷갈리는 낱말이 많다. 그래서 아이들이 처음 한글을 배우며 받아쓰기를 할 때 기상천외한 글자들을 보여주곤 한다. 그런데 ‘감기 얼른 낳으세요’라는 표현 역시 기상천외하긴 마찬가지다. ‘낳다’가 ‘배 속의 아이, 새끼, 알을 몸 밖으로 내놓다’는 의미를 지닌 단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감기 얼른 낳으세요’라는 말은 ‘감기 얼른 출산하세요’라는 뜻이다. 감기를 출산하다니! 공상과학(SF)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아닌가. ‘병이나 상처 등이 고쳐져 원래 상태로 돌아가다’는 의미를 지닌 낱말은 ‘낳다’가 아닌 ‘낫다’이다. ‘낫다’의 어간 ‘낫-’에 어미 ‘-으세요’가 붙을 때는 ‘ㅅ’이 탈락해 ‘나으세요’가 된다. 간혹 ‘낫으세요’라고 쓰는 이도 있으나 이 역시 바른 표현이 아니다. 감기를 낳아 감기의 어머니가 되라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이제 ‘감기 낳으세요’라는 표현은 더 이상 쓰지 말자. ‘감기 나으세요’라고 적어야 한다는 걸 잊지 말자.우리말 바루기 감기 안부 인사 아이 새끼
2025.11.30. 17:06
기사에서 종종 접하는 말이 ‘어닝시즌’이다. 이뿐이 아니다. ‘어닝서프라이즈’ ‘어닝쇼크’ 등 ‘어닝’이 들어간 용어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이런 말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이가 꽤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닝시즌(earning season)’은 기업들이 영업실적을 발표하는 시기를 뜻한다. 보통 분기별로 영업실적을 발표하므로 1년에 네 번 어닝시즌이 돌아온다. “1분기 어닝시즌 본격화” 등처럼 사용된다. ‘어닝서프라이즈(earning surprise)’는 어닝시즌에 발표된 실적이 예상치를 크게 웃도는 경우를 가리킨다. 이렇게 되면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한다. “위기에도 어닝서프라이즈” 등과 같이 쓰인다. ‘어닝쇼크(earning shock)’는 영업실적이 예상보다 크게 낮은 경우를 말한다. 좋은 실적을 냈어도 기대치보다 많이 낮으면 어닝쇼크라 할 수 있으며 그만큼 주가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어닝쇼크로 주가 반토막” 등처럼 사용된다. 국립국어원은 이들이 어려운 외래어이므로 ‘어닝시즌’은 ‘실적 발표 기간’, ‘어닝서프라이즈’는 ‘실적 급등’으로 대체어를 선정한 바 있다. ‘어닝쇼크’는 대체어를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실적 급락’으로 하면 어떨까 싶다. 이 밖에도 밸류에이션(→평가가치), 펀더멘털(→(경제)기초여건), 애널리스트(→(증시)분석가), 오버행(→물량 부담), 모멘텀(→성장동력·계기), 로스컷(→손절매), 가이던스(→회사 측 전망치), 이머징마켓(→신흥시장), 소프트랜딩(→연착륙), 스몰캡(중소형주), 매크로(→거시적) 등이 있다. 모두가 우리말로 바꿔 쓸 수 있는 것들이다.우리말 바루기 어닝서프라이즈 어닝시즌 본격화 실적 발표 earning surprise
2025.11.25. 19:57
매년 10월이면 비트코인이 오른다고 해서 상승을 뜻하는 ‘업(Up)’과 10월을 뜻하는 ‘옥토버(October)’를 합쳐 ‘업토버(Uptober)’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10월에는 비트코인이 상승한다는 믿음이 시장에 깔려 있었다. 그런데 이런 믿음을 뒤로하고 7년 만에 매년 10월 이뤄지던 비트코인 상승장이 멈췄다. 이에 투자자들은 “10월에는 비트코인이 오를 거라 철썩같이 믿었는데 오히려 하락하고 있어 충격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마음이나 의지, 약속 등이 매우 굳고 단단하게’의 의미를 나타낼 때 위에서와 같이 ‘철썩같이’라고 표현하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표현으로, ‘철석같이’라고 써야 바르다. 많은 이가 ‘철썩같이’라고 쓰는 이유는 “파도가 바위를 철썩 치고 간다” 등과 같이 쓰이는 의성어 ‘철썩’이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기 때문인 듯하다. ‘철석같이’를 정확히 알고 나면 이런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철석같이’는 ‘철석(鐵石)’에 ‘~처럼’을 나타내는 조사 ‘같이’가 붙은 형태로 이뤄져 있다. ‘철석’은 ‘쇠 철(鐵)’ 자와 ‘돌 석(石)’ 자가 만나 이루어진 단어로, 원래 뜻은 ‘쇠와 돌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쇠와 돌은 예로부터 ‘단단함’을 상징하곤 했기에, ‘철석’은 ‘매우 굳고 단단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따라서 ‘철석같이 믿었다’는 건 ‘쇠와 돌처럼 단단히 믿었다’는 의미가 된다. 이렇듯 ‘철석’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나면 ‘철썩’과 헷갈려 쓸 이유가 없다.우리말 바루기 비트코인 상승장 의지 약속
2025.11.23. 18:00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다. 때문에 따뜻한 옷을 입고 몸을 보호해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문장을 쓸 때 이처럼 ‘때문에’를 맨 앞에 놓는 실수를 곧잘 하게 된다. ‘때문’이 의존명사라는 걸 모르기 때문이다. 의존명사는 의미가 형식적이어서 다른 말 아래에 기대어 쓰이는 명사를 일컫는다. ‘것’ ‘따름’ ‘데’ 등이 바로 의존명사다. ‘때문’은 의존명사이므로 혼자서는 쓰일 수 없고, 다른 말 아래에 기대어 쓸 수 있다. 따라서 ‘때문’이 문장 맨 앞에 혼자 나올 수 없으며, 명사나 대명사 등을 그 앞에 붙여 ‘이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등과 같이 써야 바른 표현이 된다. 위 예문도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다. 그렇기 때문에 따뜻한 옷을 입고 몸을 보호해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와 같이 고쳐 써야 바르다. ‘때문에’와 비슷하게 잘못 쓰이는 표현이 있다. 바로 ‘뿐만 아니라’이다. “뿐만 아니라 목도리, 스카프 등으로 목을 보호해 호흡기 질환에 대비해야 한다”에서와 같이 ‘뿐만 아니라’도 문장 첫머리에 쓰는 이가 많다. ‘뿐’은 ‘그것만이고 더는 없음’ 또는 ‘오직 그렇게 하거나 그러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보조사다. ‘뿐만 아니라’는 보조사 ‘뿐’에 다시 보조사 ‘만’을 붙인 표현이다. 조사 역시 혼자서는 쓰일 수 없으므로, 문장을 시작할 때 ‘뿐만 아니라’와 같은 표현을 쓰고 싶다면 ‘뿐’ 앞에 명사나 대명사를 붙여 써야 한다. 우리말 바루기 문장 첫머리 목도리 스카프 호흡기 질환
2025.11.20. 18:50
무하마드 알리라는 권투선수가 있었다. 헤비급 선수치고는 빠르면서도 주먹이 강해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말로 유명하기도 했지만 그는 떠벌리는 것으로도 이름을 날렸다. 경기에서 승리한 경우는 물론이거니와 경기를 앞두고도 상대를 향해 끊임없이 떠벌렸다. 이처럼 자주 수다스럽게 떠들어 대는 사람을 ‘떠벌이’라 해야 할까? ‘떠버리’라고 해야 할까? 아마도 ‘떠벌이’가 아닐까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리라 여겨진다. 하지만 정답은 ‘떠버리’다. ‘떠벌이’와 ‘떠버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동사인 ‘떠벌이다’ ‘떠벌리다’를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결과라 할 수 있다. “뭘 그렇게 떠벌이고 다니느냐?”에서와 같이 ‘떠벌리다’를 ‘떠벌이다’로 잘못 쓰는 경우가 많다. ‘벌이다’는 “잔치를 벌였다”에서와 같이 무언가를 펼치거나 늘어놓는 일에 쓰인다. ‘벌이다’에 ‘떠’를 붙여 ‘떠벌이다’고 하면 “그는 사업을 떠벌였다”처럼 굉장한 규모로 차린다는 뜻이 된다. ‘벌리다’는 “간격을 많이 벌렸다”처럼 무언가의 간격을 넓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떠벌리다’ 역시 이야기를 점점 넓고 멀게, 즉 과장해서 말하는 것을 가리킨다. 정리하면 무언가를 늘어놓는 일에는 ‘벌이다’와 ‘떠벌이다’, 무언가를 넓히거나 과장하는 일에는 ‘벌리다’와 ‘떠벌리다’를 써야 한다. 그리고 알리처럼 떠벌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떠버리’라 해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헤비급 선수
2025.11.18. 18:32
다음 중 ‘아람’이 뜻하는 말은 어느 것일까요? ㄱ.아는 일 ㄴ.두 팔을 둥글게 모아서 만든 둘레 ㄷ.남의 환심을 사려고 알랑거림 ㄹ.충분히 익어 저절로 떨어질 정도가 된 열매. 아마도 ㄴ.을 고른 사람이 꽤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두 팔을 둥글게 모아서 만든 둘레는 ‘아람’이 아니라 ‘아름’이다. ㄱ.은 ‘앎’, ㄷ.은 ‘아첨(=아미)’을 뜻하는 말이다. 정답은 ㄹ.이다. ‘아람’은 충분히 익어 저절로 떨어질 정도가 된 열매 또는 그러한 상태를 의미하는 말이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요즘 주변 어디를 가나 ‘아람’을 볼 수 있는 때다. 가까이에는 매혹적인 색깔의 모과나 감이 달려 있고 산에는 활짝 벌어진 밤이나 도토리 알맹이가 떨어질 듯 매달려 있다. 모두가 성숙과 완성, 그리고 저마다의 독특한 빛깔로 풍요와 여유, 아름다움을 주는 존재들이다. ‘아람’은 이 모두를 간직한 예쁜 우리말이다. 성숙한 열매뿐 아니라 완숙한 경지에 이른 사람 등을 가리키는 말로 다양하게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러고 보니 ‘아람누리’(고양 전시·공연장)는 참 멋진 이름이다. ‘누리’가 ‘세상’을 뜻하니 ‘아람누리’는 가을(완숙한 열매의 세상)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무슨 건물을 지었다 하면 으레 외래어를 갖다 붙이는 요즘 세태에 비하면 돋보이는 이름이다. K컬쳐 물결을 타고 최근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아람’과 같이 잊혀 가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자주 사용하길 바란다.우리말 바루기 아람 계절 여유 아름다움 도토리 알맹이 성숙과 완성
2025.11.13. 19:13
‘받아드리다, 벌어드리다, 거둬드리다, 불러드리다, 잡아드리다’ 등은 바른 표기일까? 요즘 와서 이런 식의 표기가 부쩍 눈에 많이 뜨인다. ‘드리다’가 ‘주다’의 존칭 또는 존대 표현이라는 것은 대부분 잘 알고 있다. ‘선물을 드렸다’ ‘말씀을 드렸다’ 등이 이러한 예다. ‘드리다’는 명사와 결합해 동사를 만들기도 한다. 이때도 ‘드리다’는 공손의 뜻을 더한다. ‘말씀드리다’ ‘불공드리다’가 이런 유형이다. 이처럼 ‘드리다’가 존대나 공손을 나타낼 때는 표기에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문제는 ‘들이다’가 쓰일 자리에 ‘드리다’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존칭 ‘드리다’에 익숙하다 보니 발음이 같은 ‘들이다’도 무의식적으로 ‘드리다’를 쓰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서두에 나열한 단어들이 모두 ‘들이다’ 자리에 ‘드리다’를 쓴 것이다. 대체로 ‘들이다’는 안쪽으로 들어오게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손님을 안으로 들였다”에서도 안쪽으로 들어오게 한다는 뜻을 가진 ‘들이다’가 쓰였다. ‘받아들이다, 벌어들이다’ 등에 포함된 ‘들이다’ 역시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들이다’와 결합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서두의 표기처럼 ‘받아드리다, 벌어드리다’ 형태로 잘못 표기하는 것은 문자메시지 등에서 받침을 쓰지 않는 습성이 여기에도 배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우리말 바루기
2025.11.11. 17:34
“김칫국을 한 사발 들이켰다.” 해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일이 벌써 다 된 것처럼 행동한다고 할 때 쓰이는 표현이다. 답변 속 ‘들이켰다’를 ‘마셨다’로 대체해도 뜻이 통한다. 문제는 시점을 현재형으로 바꿨을 때다. “김칫국을 한 사발 들이키고 있는 거 아니냐” “김칫국부터 들이키면 안 돼요”와 같이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들이키고’는 ‘들이켜고’로, ‘들이키면’은 ‘들이켜면’으로 바루어야 한다. 물이나 술 따위의 액체를 단숨에 마구 마시다는 의미의 동사는 ‘들이키다’가 아니라 ‘들이켜다’이다. 몹시·마구·갑자기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들이-’와 단숨에 목구멍으로 넘기다는 의미의 동사 ‘켜다’가 결합한 말이다. ‘들이켜고, 들이켜니, 들이켜면, 들이켜, 들이켰다’ 등으로 활용하는 게 바르다. ‘들이켜다’에는 공기나 숨 따위를 몹시 세차게 들이쉬다는 뜻도 있다. “숲속의 맑은 공기를 들이켜니 찬물로 씻은 듯 코가 상쾌하다”와 같이 쓰인다. ‘들이키다’는 안쪽으로 가까이 옮기다는 의미의 동사다. ‘들이키고, 들이키니, 들이키면, 들이키어(들이켜), 들이켰다’처럼 활용된다. “전철에선 서 있는 사람을 배려해 발을 들이키는 게 좋다”와 같이 사용한다. “사람이 다닐 수 있게 화분을 들이켜라”의 경우 ‘들이키어라’가 ‘들이켜라’로 준 형태다. ‘들이켜다’가 기본형이어서가 아니다. ‘들이키었다’도 마찬가지다. ‘들이켰다’로 줄어든 것이다. ‘들이켜다’와 ‘들이키다’ 모두 과거형일 때 ‘들이켰다’로 활용 형태가 같다 보니 기본형을 혼동하는 일이 잦지만 구별해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함정 활용 형태 사발 들이하기
2025.11.06. 20:20
“다리를 펴고 누우실게요” “허리를 드실게요”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실게요”-. 며칠 전 허리가 아파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병원 직원들은 몹시 친절했다. 하지만 과공비례(過恭非禮)라고 했던가. 지나친 공손에서 오는 기형적 표현이 오히려 거부감이 들게 했다. 검사를 받고 치료하는 내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이러한 높임말을 들어야 했다. ‘-ㄹ게요’는 어떤 행동을 할 것을 약속하는 뜻을 나타내는 종결어미 ‘-ㄹ게’에 존대의 뜻을 나타내는 ‘요’가 붙은 것이다. 즉 ‘-ㄹ게요’는 내가 상대에게 어떤 행동을 하겠다고 공손하게 약속하는 말이다. “다시 연락할게요”는 내가 상대에게 연락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또 올게요” 역시 내가 다시 오겠다고 상대에게 공손히 약속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누우실게요”는 어떻게 되는 걸까. 우선 “누울게요”는 내가 눕겠다고 상대에게 공손하게 얘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 ‘시’가 첨가된 “누우실게요”는 어법상 성립하지도 않는다. “누우실게요”는 내가 눕겠다는 의지와 상대를 높이는 말이 결합한 희한한 표현이다. “다리를 펴고 누우실게요”는 “다리를 펴고 누우세요”, “허리를 드실게요”는 “허리를 드세요”, “이쪽으로 돌리실게요”는 “이쪽으로 돌리세요”라고 해야 한다. 무턱대고 ‘시’를 붙인다고 상대를 존경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말은 병원뿐 아니라 매장 등 요즘 손님을 대하는 곳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공손한 표현이라 생각하고 직원들을 교육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하지만 잘못된 높임말엔 오히려 거부감이 들 수 있다. “누우실게요”→“누우세요” 처럼 ‘-실게요’를 ‘-세요’로 바꾸면 대부분 해결된다.우리말 바루기 존칭 병원 직원들 기형적 표현
2025.11.04. 19:27
휴대전화를 통해 문자메시지나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를 사용하게 되면서 빠르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축약된 표현이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를 ‘감사’로 줄이는 것을 넘어 ‘ㄱㅅ’으로 표현하기도 할 정도로 속도가 중요해졌다. 그러다 보니 문장부호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처럼 써야 할 말줄임표를 ‘…’도 아닌 ‘..’처럼 쓰는 이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문장부호에도 맞춤법이 존재한다. 말줄임표는 여섯 개의 중점으로 이뤄진 문장부호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실제 언어생활에서 세 개의 중점(…)이 많이 쓰이고 있음을 인정해 맞춤법을 개정했다. 이뿐 아니라 가운데 찍었던 것을 ‘......’처럼 아래에 찍는 것도 바른 표기로 허용했다. 따라서 지금은 ‘……’ ‘…’ ‘......’ ‘...’ 모두 바른 표현이므로, 이 중 아무거나 써도 된다. 하지만 ‘..’처럼 마침표 두 개만 쓰는 것은 바른 표현이 아니므로 주의해 써야 한다. 낫표(「 」)와 화살괄호(〈 〉)도 지금은 잘 쓰이지 않아 따옴표(‘ ’)로 대체해 쓸 수 있도록 했다. 그러므로 「노벨상 수상집」은 ‘노벨상 수상집’, 〈표준국어대사전〉은 ‘표준국어대사전’ 등과 같이 쓰면 된다. 공통 성분을 하나로 묶을 때 쓰는 가운뎃점도 ‘한·미·일’ 대신 ‘한, 미, 일’처럼 쉼표를 찍어도 된다. ‘10·9 한글날’처럼 특정한 날을 표시할 땐 숫자 사이에 중점을 찍어야 했으나 ‘10.9 한글날’과 같이 마침표를 찍어도 되도록 규정이 바뀌었다.우리말 바루기 문장부호 노벨상 수상집 공통 성분 숫자 사이
2025.11.02. 17:30
가로수 수난 시대다. 간판을 가린다는 민원에 가지를 싹둑 자르고, 거리를 정비한다며 함부로 베어 버리기 일쑤다. 가로수 수난사 못지않게 ‘싹둑’이란 단어도 멋대로 표기될 때가 많다. “아파트 공사장 주변 아름드리 가로수 수백 그루가 하루아침에 싹뚝 베어져 밑동만 남았다”와 같은 사례를 자주 접한다. ‘싹뚝’이란 말은 없다. 발음은 [싹뚝]이지만 ‘싹둑’으로 써야 한다. ‘싹둑’처럼 한 단어 안에서 된소리로 발음될 때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해도 되는지 헷갈릴 때가 종종 있다. 답은 한글맞춤법 제5항에 나온다. 한 단어 안에서 뚜렷한 까닭 없이 나는 된소리는 다음 음절의 첫소리를 된소리로 적는다고 규정돼 있다. ‘가끔, 거꾸로’처럼 앞말에 받침이 없는 두 모음 사이에서 나는 된소리가 여기에 해당된다. ‘ㄴ, ㄹ, ㅁ, ㅇ’ 받침 뒤에서 나는 된소리도 마찬가지다. ‘잔뜩, 털썩 듬뿍, 몽땅’ 등과 같이 발음하고 표기한다. 예외도 있다. ‘ㄱ, ㅂ’ 받침 뒤에서 나는 된소리는 같은 음절이나 비슷한 음절이 겹쳐 나는 경우가 아니면 된소리로 적지 않는다. 깍두기[깍뚜기], 시끌벅적[시끌벅쩍], 덥석[덥썩], 법석[법썩]이 올바른 표기와 발음이다. 5항에서 ‘한 단어’란 한 형태소로 이뤄진 단어를 뜻한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복합어 눈곱[눈꼽]과 같은 표기는 이 조항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눈’과 ‘곱’이란 각 형태소를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탯줄이 떨어지며 생긴 자리인 ‘배꼽’과 다르다. ‘배+곱’으로 분석되는 말이 아니므로 5항에 따라 소리대로 적는다.우리말 바루기 규정 가로수 수난사 아름드리 가로수 아파트 공사장
2025.10.30. 18:44
한국에서 단풍이 절정이다. 지난 주말 전국 유명 산에는 단풍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고 한다. 여기서 문제 하나.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와 “단풍이 곱게 들었다” 어느 것이 나은 표현일까? 아마도 앞쪽을 선택한 사람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단풍이 들었다’고 하는 것보다 ‘단풍이 물들었다’고 하는 것이 더욱 구체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풍이 곱게 들었다”고 하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다. 이는 ‘단풍’의 의미 때문이다. ‘단풍(丹楓)’은 기후 변화로 잎이 붉은빛이나 누런빛으로 변하는 현상을 뜻한다. 즉 잎이 붉은 색깔로 물든 것이 ‘단풍’이다. 따라서 ‘단풍’은 ‘물들다’보다 ‘들다’와 결합하는 것이 더욱 자연스럽다. “단풍이 한창 들었다” “울긋불긋 단풍이 들었다” 등처럼 표현하는 것이 좋다. 굳이 ‘물들었다’를 사용하고 싶으면 “잎이 곱게 물들었다”고 하면 된다. 이처럼 단어도 사람과 같이 저마다 타고난 속성이 있어 서로 잘 어울리는 짝이 있다. 앞말의 특성 때문에 뒷말의 선택에 제약이 온다고 해서 이런 것을 ‘의미상 선택 제약’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다시 문제 하나. 지금은 단풍이 한창이지만 곧 있으면 단풍 든 잎이 떨어지게 된다. 이럴 땐 “낙엽이 떨어진다”고 해야 할까? “낙엽이 진다”고 해야 할까? 정답은 ‘진다’이다. ‘낙엽(落葉)’은 한자어로 나뭇잎이 떨어짐 또는 떨어진 나뭇잎을 뜻한다. 단어 자체에 ‘떨어지다(落)’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낙엽이 떨어진다’고 하면 앞뒤로 의미가 중복된다. 따라서 “낙엽이 진다”고 하는 것이 더욱 적절한 표현이다.우리말 바루기 금수강산 단풍 의미상 선택 기후 변화 문제 하나
2025.10.28. 20:32
신문 기사를 보면 대기업·공기업 등 상위 기업의 하청업체에 대한 갑질 소식이 심심치 않게 전해진다. 하청업체 근로자들이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산업재해를 입는 경우도 적지 않게 들려오고 있다. 이러한 소식을 접하면서 늘 드는 생각이 ‘하청업체’라는 용어 좀 바뀌었으면 하는 것이다. ‘하청업체’란 이름 자체에서 갑을 관계가 느껴지고 이는 실제 힘의 논리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하청업체’는 공식 명칭은 아니다. ‘하청’이란 옛 민법상의 규정인데 이것이 일상용어로 아직도 쓰이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론 갑과 을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곳에서 을의 입장에 있는 회사를 ‘하청업체’라 부르는 경향이 있다. 포괄적으로 갑을 관계에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라 할 수 있다. ‘하청(下請)’은 일본식 한자어로 알려져 있다. 국립국어원은 ‘하청’의 순화어로 ‘하도급’을 선정한 바 있다. 법제처도 ‘하청’을 일본식 용어 일괄정비 대상에 포함해 ‘하도급’으로 고치게끔 하고 있다. 그러나 ‘하도급’이란 용어 역시 상하 위치가 느껴지는 한자어라는 점에서 별반 차이가 없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하청업체’ 대신 ‘협력업체’가 좋은 대안이 아닐까 싶다. ‘협력업체’는 법률적으론 대기업 일을 위탁받아 하는 회사 등을 가리킨다. 하지만 ‘협력업체’란 말에는 공생 관계, 즉 상호 윈윈하는 뜻이 포함돼 있다. 갑을 관계에 있는 회사를 포괄적으로 ‘협력업체’라 부르면 좋을 듯하다. 용어를 바꾼다고 해서 바로 달라지는 건 없다. 그러나 말은 곧 정신을 담는 그릇이라 했듯이 용어는 인식을 바꾸어 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우리말 바루기 하청업체 협력업체 하청업체 근로자들 갑을 관계 용어 일괄정비
2025.10.23. 19:25
긴 명절 연휴를 맞아 오랜만에 고향을 여유롭게 방문해 일가친척들의 얼굴을 두루두루 만나고 왔다는 이가 많다. “연휴가 길어 고향에서 부모님뿐 아니라 오랫동안 만나뵙지 못했던 친척 어르신들을 만나 그동안의 안부를 여쭙고 왔다” “오랜만에 고향을 방문해 부모님과 함께 친척 어르신 댁을 돌며 인사를 여쭈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런데 웃어른에게 말씀을 올리는 일을 나타낼 때 위에서처럼 ‘여쭙다’라고 하기도 하고, ‘여쭈다’라고 하는 이도 있다. 어떻게 써야 바른 표현일까. 둘 중 하나는 틀린 표현 같지만 둘 다 바른 표현이므로 고민하지 말고 아무거나 써도 된다. ‘여쭙다’와 ‘여쭈다’는 모두 표준어로 인정된 복수 표준어로, 이는 한 가지 의미를 나타내는 형태 몇 가지가 널리 쓰이며 표준어 규정에 맞으면 그 모두를 표준어로 삼는다는 규정(표준어 사정 원칙 제26항)에 따른 것이다. ‘여쭙다’와 ‘여쭈다’는 상대를 높이는 존댓말이므로 높임법에 주의해 써야 한다. “나는 매일 부모님께 아침 문안을 여쭙는다”고 쓸 수는 있어도 “부모님께서는 나에게 매일 아침 문안을 여쭙는다”고 쓸 수는 없다. 다시 말해,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사용할 수는 있지만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사용할 수 없는 단어라 할 수 있다. ‘여쭈다’는 ‘여쭈고·여쭈어·여쭈니·여쭈는·여쭈었다’로 규칙 활용을 하지만, ‘여쭙다’는 ‘여쭙고·여쭈워·여쭈우니·여쭙는·여쭈웠다’로 불규칙 활용을 하므로 표기에도 유의해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표준어 규정 표준어 사정 복수 표준어
2025.10.21. 18:40
‘양해각서 체결’이란 표현에 대해 두 가지 유감이 있다. 하나는 ‘양해각서’, 즉 ‘문서’를 ‘체결’한다는 표현이 주는 어색함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양해각서’를 줄여 ‘MOU’라고 적는 데 대한 것이다. 어느 날 경제부 선배가 ‘양해각서를 체결했다’는 표현을 ‘교환했다’로 수정해 달라고 했다. ‘체결하다’는 계약이나 조약을 공식적으로 맺는다는 말이다. “항공협정을 체결했다” “평화조약을 체결했다” “매매계약을 체결했다”처럼 약속을 뜻하는 말과 어울린다. ‘양해각서’는 국가 간에 합의한 내용을 확인해 기록하는 문서일 때도, 민간 기업 사이에 본계약 체결 전에 서로 양해된 사항을 기록하는 문서일 때도 있다. ‘각서를 썼다’ ‘각서에 서명했다’고 하듯 ‘양해각서’ 뒤에도 ‘쓰다’ ‘서명하다’가 와야 자연스럽다. 서명한 뒤 주고받는 행사를 했다면 ‘교환했다’고 해야 자연스럽게 통한다. 하지만 ‘양해각서’를 ‘협약’ 정도로 넘기고 ‘체결하다’로 받는 문장이 흔하다. 지난달 22일 한국과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인공지능산업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이때도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한 언론 매체가 대부분이었다. ‘교환했다’는 극히 일부였다. 지난 1일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가 왔을 때도 거의 “양해각서를 체결했다”였다. 이어지는 문장들에서 ‘양해각서’는 다른 문자, 다른 말로 나타난다. MOU. ‘Memorandum of Understanding’의 약칭이다. 한 글자 줄였는데, 어떤 경제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어려울 수 있다. ‘양해각서’로 이어 가는 게 독자들은 더 낫다.우리말 바루기 양해각서 체결 양해각서 체결 표현 유감 본계약 체결
2025.10.19. 18:49
생선회를 가리켜 ‘사시미’라 부르는 사람이 꽤 있다. ‘사시미(さしみ, 刺身)’는 생선회를 뜻하는 일본말이다. 횟집에 가면 이왕이면 밑반찬이 많이 나오는 집이 좋다. 이때 밑반찬을 ‘쓰키다시’라 부르는 사람도 많다. ‘쓰키다시(つきだし)’는 일본 요리에서 본요리 전에 나오는 일종의 전채를 가리키는 말이다. 국립국어원은 ‘곁들이 안주’로 바꿔 쓸 것을 권하고 있다. 횟집에는 ‘스시’도 있다. ‘스시(すし)’는 소금·식초 등으로 간을 한 밥 위에 얇게 저민 생선·김·달걀 등을 얹거나 말아 만드는 일본 요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말로는 상황에 따라 ‘초밥’이나 ‘생선초밥’ 등으로 부르면 된다. 생선회를 먹을 때 빠지지 않는 게 ‘와사비’다. ‘와사비(わさび)’는 매운맛을 내는 일본의 대표적 향신료다. 국어원은 우리말 대체어로 ‘고추냉이’를 선정했다. 생선회를 먹은 다음에는 탕으로 마무리하는 게 깔끔하다. 이럴 때 매운 것을 먹지 못하는 사람은 ‘지리탕’을 시킨다. 여기에서 ‘지리(ちり)’는 생선·두부·채소 등을 냄비에 넣어 맑게 끓인 국을 지칭하는 일본어다. 국어원이 제시한 순화어는 ‘맑은탕’ ‘싱건탕’이다. 이 외에도 음식과 관련해 쓰이는 일본어나 일본식 표현이 적지 않다. 사라다(→샐러드), 락교(→염교), 아나고(→붕장어), 마구로(→다랑어), 소바(→메밀국수), 샤브샤브(→전골), 다시(→맛국물), 사라(→접시), 다대기(→다진 양념), 다마네기(→양파), 오뎅(→어묵), 와리바시(→나무젓가락) 등이 있다.우리말 바루기 일본 음식 우리말 대체어 곁들이 안주 이때 밑반찬
2025.10.16. 18:47